[유원]은 십여 년 전, 비극적이고 충격적이었던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열여덟살 주인공 유원의 이야기이다.
화재 사건 이후로 자신을 살린 대신 세상을 떤 언니, 11층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자신을 받아 내면서 몸도 삶도 망가져 버린 아저씨, 외로운 나날 가운데에서 훌쩍 다가온 친구 수현이 등 관계 속에서 겪는 복잡한 상처와 딜레마를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책 자체로도 완성도가 대단하지만 난 이런 섬세한 부분부분에 신경을 쓴 작가가 대단하신 것 같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작가의 뛰어난 심리묘사로 너무나도 공감된 주인공의 심리는 고통스러웠다. 죄책감에서 자기혐오로, 증오와 연민 등 복잡하고 당혹한 감정선이 아슬아슬하게 흐르며 긴장을 자아내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작게 시작된 미움은 점점 커지다 언젠가 나로 향하고 마음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보인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마음을 글로 이렇게 푼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새삼스럽게 정말 대단한것같다.
엄친아 그 자체였던 언니는 화재 속에서 아기였던 유원을 구하고 세상을 뜨고, 그 이후로도 사람들은 언니를 떠올렸다. 그렇게 유원에겐 언제나 자기 때문에 죽은 것만 같은 언니가 따라다녔다. 살아있는 자신은 없는 존재였고, 죽은 언니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너무 슬펐다. 유원이가 어릴적 화재를 잊고 평범한 나날을, 언니를 대신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닌 온전한 유원 자신의 삶을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
언니가 아파트 창밖으로 떨어뜨려준 아기 유원을 맨몸으로 받아낸 아저씨는 사회의 영웅이 되었으나 다리 한쪽을 평생 절어야 했다. 매번 유원의 집에 찾아와 신세지고 돈을 꿔가는 아저씨. 생명의 은인이라는 고마움과 딸 때문에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죄책감에 간이고 쓸개고 장기까지 다 주려는 부모님. 유원의 눈엔 자꾸 선을 넘는 아저씨가 불편하고, 싫었다. 유원에게 아저씨는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불청객이었다. 힘든 나나을 버텨내는 유원이 자랑스럽다. 나였으면 죽고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것 같다. 살은 딸보다 죽은 누나를 중요시하고, 그런 딸을 살린 은인을 딸보다 중요시하는 부모님과 누나, 아저씨는 과연 아군일까 적군일까.
한 번 미움과 슬픔을 마주하면 그 이후론 미움과 슬픔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 안의 나와, 나를 둘러 싼 세상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그 갈등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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